우물이
사라진 자리들

진상용 독자

강원도 오지마을에 살던 어린 시절.
시오리 통학 길은 무척이나 멀었다. 저학년 코흘리개 꼬맹이 시절엔 더욱 그랬다. 엄마 앞가르마처럼 반듯한 매봉재 오솔길을 넘으면 울창한 굴참나무 숲이었고 숲을 벗어나면 넓고 푸른 곡창을 다스리는 커다란 저수지가 있었다. 그 긴 둑을 지나면 마을로 이어지고 강물 위에 그림처럼 높이 걸린 출렁다리를 건너면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이 우리 학교였다. 학교 반경을 중심으로 삼아 사방 수십여 리 사는 아이들이 모여 많지 않은 전교생을 이루고 지냈다. 지금도 결식아동이 꽤 있다는 보도가 자주 들리는 형편일진대 6.25전쟁 직후의 무엇 하나 온전한 게 서있지 못하던 시절이었으니 오죽했겠는가.

길은 멀었지만 학교 길은 언제나 즐거웠다. 자연이 펼쳐놓은 먹거리가 무척 많았으니까. 누구나 예외 없이 배가 고팠던 탓으로 철따라 우린 먹는 재미를 잘도 찾아냈다. 진달래 꽃잎이랑 찔레순이랑, 수영줄기랑, 아카시아랑, 무엇이나 재잘거리며 잘 뜯어먹고 짓궂은 머슴애들은 도랑을 뒤져 물고기나 가재를 재미로 지루하고도 먼 통학 길의 고달픔을 잊곤 했던 것이다. 집에 거의 다다른 앞산중턱 길 옆엔 옹달샘이 있었다. 커다란 바위 밑의 모래를 뚫고 폭폭 솟아나는 샘물은 뼈가 시리도록 차가웠고 물맛 또한 좋았다.
돌다리 끝에서 불꽃이 튈만큼 지독한 왕가뭄이건, 개울 둑방이 헐려나가는 장마철이건, 샘의 물은 절대로 줄거나 느는 법이 없었다. 앳된 내 얼굴은 물론, 맑으면 쪽빛 하늘을, 흐린 날은 서로 머리 부딪치는 구름장들을 거짓 없이 보여주는 물거울이었다.

그 샘물은 참 영험했다. 옻 오른 사람들이 와서 씻으면 못된 피부병이나 종기 있는 사람이 와서 바르면 그도 나았고 속병 든 사람들이 마시면 효과를 보았다. 소원 있는 사람이 와서 빌면 그 소원 또한 들어주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뜻은 그 물을 신앙적으로 미화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의 나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의 믿음이자 생각이 그러했다는 뜻이다. 우린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 샘물 턱에 무릎 꿇고 엎드려서 물을 마셨다. 무릎 접고 엎드리지 않으면 단 한방울도 마실 수가 없도록 옹달샘터 구조는 특별났다.
물을 마시면 갈증이 가셨다. 아니 기나긴 배고픔의 허기가 가셨다고 말하는 게 옳다. 벌컥벌컥 샘물 들이켜고 무릎을 세워 벌떡 일어서면 눈 아래 마을 집들은 원색사진처럼 더 또렷해 보이고 한달음에 고갯길을 내리달려 삽작문에 이를 힘이 솟았다.

여러 해 전에 고향 마을 앞을 가로지르는 길이 나면서 샘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 우물대신 이젠 고향에도 간이상수도가 설치돼 부엌 안까지 물이 들어오게 되었으나 여전히 마을 이름은 ‘참샘골’이다.
우물이 없어진 곳이 어디 거기뿐이랴. 지금 우리가 사는 인근 동네 십정동(十井洞)이, ‘열 우물’의 명칭으로만 남았고, 아파트가 밀집된 우리 마을 옛 이름은 후정(後井)이지만 경로당의 토박이 노인들 기억 속에나 겨우 ‘뒤 우물’이 기억될 뿐이다. 또 있다. 자주 오르는 산의 등산로 옆 계곡에 있던 약수터도 몇 년 전에 없어졌다. 수질이 나빠져 식수 부적합 판정이 나서 폐쇄해버린 것 같다.
그 약수는 태고 이래로 그 자리에서 인근 주민들의 생명수 역할을 해왔을 것이다. 그리고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주었을 것이다.
어찌 사람뿐이겠는가. 인기척 뜸한 시간이면 산새나 다람쥐도 찾아와 목을 축였을 것이고 작은 소금쟁이들도 소중한 삶의 터전으로 삼았을 것이다. 부전나비도 꽃의 꿀만 찾아 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 물가에 자주 들렀을 것이며 달밤엔 또 무엇이 왔다 갔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 샘이 꼭 인간의 식수 기능으로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사람이 마시기 부적합하다면 그대로 놔두면 된다. 마실 수 없는 물이라는 표시만 해놓으면 다들 알아서 한다.
꼭 약수라는 명칭을 붙이지 않더라도 바위틈에서 물이 솟아나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존하면 될 일이다. 그냥 샘으로, 샘에서 작은 물이 흘러가도록 남겨둬야 순리에 맞는다.
자연을 가급적 원상태로 보존해 물은 저절로 흐르게 두고, 박힌 바위가 있으면 피해가고, 큰 나무가 막으면 돌아가도록 인식을 가져야 한다.

산 오르는 길에 들러 땀 젖은 얼굴이나 손을 씻든지, 청아하고 시원한 샘물 소리를 듣고 바라보며 지친 걸음이라도 추스를 수 있다.
사람이 먹지 못할 물이라고 해서 콘크리트로 덮어 없애버려야 한다는 발상이 과연 최선인가. 사람이 먹을 수 없는 모든 물은 죄다 메워버려야 하는가.
도시 태생의 아이들에게 물은 수도꼭지에서 저절로 나오는 게 아니라 이런 바위틈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자연의 이치를 직접 보여줘야 한다. 그렇게 세상 밖으로 드러나는 한 줄기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해야 한다.
하기야 급격히 늘어난 이곳 신도시 사람들도 물 걱정을 안하며 살고 있다. 14층의 고층아파트인 우리 집 주방까지도 생명의 물이 상수도관을 통해 전달되기까지는 그 분야에서 일하는 종사자들의 노력이 있기 때문인 것을 의식하지 않으며 지날 때가 많다.

모처럼의 휴일. 오늘 나는 가쁜 숨 헐떡이며 계양산에 올랐다. 계곡이야 깊지만 손 담글 물 줄기조차 말라버린 골짜기. 묵직한 배낭 속 수통에다 챙겨온 물 한 모금도 아끼고 싶은 이유는, 지난 60여 년의 세월을 지내오는 동안의 경험으로 그 소중함을 알기 때문이다.
환경문제로 말도 많은 요즘, 그 고향의 오솔길 옆 옹달샘 물 한 바가지가 무척이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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